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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격리병동 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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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격리병동 5일째

'건강한 루틴에 대한 욕망'


 

오늘은 벌써 이 병원에 입원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그냥 병원이었으면 밖에 산책도 하고 뭐 가족이나 친구도 잠깐 왔다 가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도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지내고 있다. 여기는 아침 5시 반부터 회진을 돌기 시작하는 것 같다.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넷플릭스 보느라고 잠에 취해있는데 5시 반부터 혈압 재고 열 재고 피 뽑고... 오늘은 비몽사몽 한 채로 계속 오전 내내 보냈던 것 같다.

 

격리병동 5일 차 아침

 

아침밥 뚜껑 열기도 전에 엑스레이 찍으러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혈전 방지 주사를 또 맞았다. 휴 이 아픔은 언제 적응될까.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  이 병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담당 의사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여기는 전화로 환자와 소통하시는 것 같은데, 다행히 엑스레이 및 피검사 등등 다 들어오기 전보다 더 나빠지진 않았다고 한다. (더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목요일엔 안되냐고 물어보니 그날 자정까지가 격리해야 되는 날이라 금요일 오전에 일찍 퇴원하라고 하셨다.

 

오늘 아침에는 같은 병동에 계신 두 분이 퇴원하셨다. 곧 나도 겪게 될 상황이니 유심히 지켜봤다. 일단 간호사 선생님께서 귀중품이나 소독해서 밖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을 싹 가져가시고 나갈때 입을 옷을 주신다. 이때, 옷을 따로 싸오거나 택배로 가져오지 않았으면 가족이나 지인이 병원 1층 원무과로 가져다준 후에 절차를 거쳐서 병실에서 그 옷을 받게 된다. 가져올때에는 속옷이랑 신발도 필수다. 일단 나갈 때가 되면 그날은 수액도 안 맞아도 되고 자유로운 두 팔로 다 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져온 퇴원복을 입고 간호사 선생님들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을 갖춰 입고 나가게 된다. 퇴원 시간은 사람마다 각각 정해져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어쨌든 3인실에서 2명이 나가셔서 오늘 나는 혼자 방을 쓰게 됐다. 그래서 오랜만에 자유롭게 친구랑 전화로 오래 수다도 떨고😆

 

격리병동 5일 차 점심

 

오늘은 점심이 맛있었다. 밥이 일단 김치볶음밥이어서 맛있었고 햄+김+김치 조합은 역시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전이랑 오른쪽 아래 마카로니 샐러드같은것도 딱 깔끔하게 느끼한 걸 잡아줘서 좋았다. 

 

오늘은 11시반 정도에 줌으로 인터뷰를 보는 일정이 있어서 오전에 준비하느라 시간을 썼는데, 결론적으로는 인터뷰를 그다지 잘 하진 못한 것 같다. 작업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하라고 하셨는데 머릿속으로는 잘 그려지지만 뭔가 내용적으로 부족함이 아직 있다고 해야 하나 🙄❓❔ 그래도 준비할 때에는 나름 절박하게 했던 것 같은데, 막상 인터뷰를 보니 될 대로 돼라 - 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요새 제대로 뭔가에 집중하거나 내면적으로 채워질 수 있는 시간들이 없었던 탓인지 형식적인 말들로만 나를 꾸며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도 있고 해서 문득 든 생각은 나에게 어떤 최소한의 루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맛있게 차려먹진 않아도 아침 + 점심 + 저녁의 조합으로 식사를 하고, 아침을 먹으면 이를 닦고 씻고 약간의 취미 활동을 가볍게 한다던지. 그리고 저녁에는 밥을 먹으면 운동을 하고 씻고 하루를 정리해나가는 이런 취미를 가진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내가 어떤 직장에 있게 되어도 꼭 지킬 수 있는 그런 루틴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영어 공부하기 이런 허황된 꿈만 좇지 말고 하루에 루틴으로 조금씩만 건강하게 지내다 보면 또 새로운 무언가를 습관으로 들이게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실 창피하지만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이 닦는 습관도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왜냐면 앞으로 또 뭘 먹게 될지 모르고 일단 치우는 것도 귀찮으니까💦 하지만 그런 구구절절한 이유를 떠나서 나의 생활 패턴을 스스로 만든다는 게 얼마나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만들고 뭔가 더 큰 일을 할 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격리병동 5일 차 저녁

 

아무튼 여기 있으면서 그래도 좋은 습관이 몇 개 생겼다. 아침 저녁 먹자마자 바로바로 이 닦기. 아침 7시 반에 먹기, 점심 12시 반에 먹기, 저녁 5시 반에 먹기. 뭔가를 제대로 먹지 않아도 매시간마다 나를 자극하게 하는 이런 루틴이 있다는 게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떠나 생활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식 생각도 하나도 안 나고(과일은 솔직히 먹고 싶다) 밥이나 배고픔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일상을 지내면서 배고프다는 생각 자체도 집중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매일 패턴적으로 뭘 입에 넣어주니 배고프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병원 밥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하루 세 끼 밥이랑 약만 먹고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이런 생각이 들다니. 참 여기는 신기한 곳이다...

아무튼 오늘은 루틴을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한 하루였다. 비록 가장 기본적인 하루 세 번 밥먹기 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