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2021: 판타지 오디세이 A Fantasy Odyssey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2021. 3. 30 ~ 2021. 5. 30
<제작자> (2012), <고립 연구소> (2016) -루시 매크래(Lucy McRae)
두 작품 모두, 과학 기술의 진보와 동반하는 인간의 신체 변화를 탐구하는 단채널 영상이다. 컬러 영상으로 음악을 비롯한 사운드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제작자> (Make Your Maker) 의 경우 생명공학이 극한으로 발달한 가상의 미래의 모습을 연출했다. 가정집과 실험실 그 중간 쯤 되는 공간에서 인간을 복제하고 재단하고 조합한다. 이 모든 과정을 디테일하고 감각적으로, 물론 비현실적이고 실제 과학에 대입해 보면 허구임에 분명함에도 마치 정말로 일어날 법한 일 처럼 보여준다. 거기 더해서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 한 배경 음악의 도움으로 과하게 신뢰를 주는듯한 연출을 했다. 모든과정을 거치면 인간의 유전자는 마치 기성품이 된 것을 비유하는 듯 케익처럼 그릇에 담겨 나오고 그것을 먹는 주인공과 그곳이 ‘Chu’라는 가게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인간의 외적, 혹은 내적 특성과 유전적인 요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래로, 생명 활동에 유리한 요인만을 취해 인간을 재단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종종 제기되었다. 그러나 <제작자>의경우, 단순히 재난 영화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인간의 유전적 복제물이 컴팩트해지고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인간 객체의 식품 공급원이 되기까지 하는 미래를 연출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생명공학을 다루는 수 많은 주제들 사이에서 창의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이것을 연출하는 방식은 아직 클리셰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복제 인간의 주체자 혹은 결과물, 그리고 AI 형상이 보편적으로 여성, 그중에서도 육감적인 몸매에 단정한 얼굴, 더 나아가 친절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이 우월한 유전자라고 취급되며, 복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인지, 이러한 생명공학 분야의 미디어 전반에 걸쳐서 통용되어져 왔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여성의 신체가 복제의 대상으로써 사용되고 있으며, 명확한 맥락이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유전자들 사이에서 인간의 의도적 선택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 시도를 하는 것이, 여러가지 색깔의 케익을 진열하는 것 보다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고립 연구소> (The Institute of Isolation) 는 장기적인 고립, 혹은 극한의 경험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는 가상의 연구소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연구소에서 홀로 신체에 극한의 감각을 가하면서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기록한다. 극한의 감각에는 고립 또한 포함되고, 극한의 고요, 미세중력 적응, 물 위에서 극한의 체력 소모 등이 있다. 마치 우주비행사의 훈련과도 같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고립’이다. 홀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생명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이 작품을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겪는 주인공을 보면, 인류의 미래는 각자가 고립된 채, 스스로의 신체 능력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작가의 상상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한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주인공(작가)이 이제는 ‘자연에 의한 진화가 아닌 인간의 의도대로 진화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작품에서 사운드가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우주나 미래 공간을 표방하는 전자음악 패드 사운드와, 고립된 연구소라는 장소적 특성에 걸맞는 차가운 파편 같은 어쿠스틱 사운드의 조화였다. 시각과 청각의 일치감으로 인해 다큐멘터리 형식을 더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또, 실험 항목 중 청각에 관련된 두 가지 장면이 있는데, 극한의 저음 진동속에 있는것과무반향실에서 극한의 고요속에 있는 실험이다. 인간의 청각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 또한 진화에 필요한 요소로써 여겨진다는 점이 작가의 상상력에 얼마나 디테일한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작가 Lucy McRae는 SF작가이자 인체 설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예술과 과학분야 두가지에 걸쳐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은 단지 공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실천에 기인한 예술로써 과학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발명과 연구를 하고 있다. 작품 내에서 미래의 장소와 여러 도구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유 또한, 작가의 실천이 반영된 치밀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그의작품에 더욱 진정성을 느끼고 사람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힘이 되었다.
<탈피> (2021) 장서영
이 작품은 같은 작가의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와 같은 구조물 안에 설치된 영상 작품이다. 아크릴은 마치 무한대 기호 모양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앞 작품을 보고 바로 옆에 설치된 작품을보기 위해선 아크릴 구조물 밖으로 둘러 나가서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작품 제목인 ‘탈피’ 처럼 관람객은 부드러운 곡선의 동선으로 인간의 종말, 유한함에서 벗어나 이 작품 앞에 앉게 된다. 앞의 작품이인체의 끝이자 종말을 뼈의 이미지로 표현했는데, 이 작품은 대비되는 모습으로 부드럽고 껍질사이를 비집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인체의 종말을 딱딱한 뼈의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를 고화질의 비디오로 보여줬다면, 살아남는 과정을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는 픽셀이 드러나는 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데이터 모싱(Datamoshing: 글리치 테크닉) 기법을 사용하여 픽셀들이 서로 밀어내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 처럼 보여주었다. 또한 사운드의 측면에서도 앞선 작품은 더 미니멀하고 노이즈 음악 스타일인 반면, 이 작품은 오히려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하였다. 각 매체가 가진 특성을 비틀어서 사용한 점은 작가가 시사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강조해주었다. 그 결과 작은 픽셀들 사이로 다른 픽셀이 대체되는 패턴이 계속해서 세포가 증식하며 자라나고 부드럽게 이동하는 것 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형태에 빗대어 인간의 끊임없는 연속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영상과 사운드의 감상 뿐만 아니라 무한대 모양으로 설치된 아크릴 벽 안에서 감상하는 체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작품의 내용과 인스톨레이션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작품의 주제 의식과 그 작품을 보러 들어가는 관람객의 짧은 여정이 하나의 세련된 인터렉션으로 작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이천 여행지 추천 2탄(예스파크, 도깨비 셀프 바베큐) (0) | 2022.04.23 |
---|---|
경기도 이천 여행지 추천 1탄(시몬스 테라스, 광주요 코유 카페) (0) | 2022.04.22 |
노브랜드 버거 페퍼로니 버거 후기 (4) | 2021.08.04 |
또 생각나는 제주도 맛집 Best 5 + 뷰 맛집 카페 (8) | 2021.07.18 |
MMCA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0) | 2018.07.02 |